토마스 아퀴나스 심층 인문학 에세이 · Chapter 02
감정의 두 기둥: 욕망계 정념과 분노계 정념
좋거나 나쁜 것이 ‘쉽게’ 다가올 때와 ‘어렵게’ 다가올 때 감정은 어떻게 달라질까?
한눈에 답하기
욕망계 정념은 선과 악을 그 자체로 향하거나 피하는 운동이고, 분노계 정념은 얻기 어렵거나 피하기 어려운 대상과 씨름하는 운동입니다. 아직 가능한 어려운 선은 희망을, 불가능해 보이는 선은 절망을 일으킵니다. 닥쳐오는 어려운 악을 이길 수 있다고 보면 대담함, 이길 수 없다고 보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본문 깊이 읽기
토마스는 인간의 감정(정념)을 크게 두 개의 방으로 명쾌하게 나누었습니다. 이 분류는 오늘날 심리학의 정서 분류와도 기막히게 맞닿아 있습니다.
�️ 제1기둥: 욕망계 정념 (Passiones Concupiscibiles)
우리가 감각적으로 좋아하는 '선(Good)'을 향해 끌리고, 싫어하는 '악(Evil)'을 피하려는 가장 직접적인 6가지 기본 감정입니다.
① 사랑(Amor) ↔ ② 미움(Odium) / ③ 욕망(Desiderium) ↔ ④ 혐오(Fuga) / ⑤ 기쁨(Gaudium) ↔ ⑥ 슬픔(Tristitia)
️ 제2기둥: 분노계 정념 (Passiones Irascibiles)
하지만 인생은 꽃길만 있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선을 얻으려 할 때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있거나, 닥쳐오는 끔찍한 위험을 피하기 어려울 때 영혼은 결사적인 투쟁 상태에 돌입합니다. 이때 일어나는 5가지 감정입니다.
① 희망(Spes) ↔ ② 절망(Desperatio) / ③ 용기(Audacia) ↔ ④ 공포(Timor) / ⑤ 분노(Ira)
토마스는 분노가 단순히 나쁜 감정이 아니라, '내게 닥친 장애물과 불의를 부수고 원래의 선을 회복하려는 강인한 저항 에너지'라고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맥락과 뉘앙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제1부 제2편(I–II), 질문 22~48에서 정념을 질문–반론–답변의 치밀한 형식으로 다룹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과 윤리학을 기독교적 인간 이해 안에서 재구성하면서, 몸을 지닌 인간에게 감정은 우연한 결함이 아니라 감각적 욕구의 자연스러운 운동이라고 봅니다.
분노계라는 이름 때문에 모든 감정을 공격성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핵심은 난관입니다. 분노는 이미 가해진 해악에 맞서 정의를 회복하려는 특수한 운동이라 짝이 되는 반대 정념이 없습니다. 이 구조는 감정이 대상의 가치뿐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판단도 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단순화하지 않기
중세의 ‘정념’은 현대 한국어의 수동적 격정과 정확히 겹치지 않습니다. 또한 욕망계와 분노계라는 분류를 뇌의 두 회로나 성격 유형처럼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이것은 선과 악이 쉽거나 어렵게 다가오는 방식에 따라 욕구의 운동을 논리적으로 구분한 체계입니다.
원전 길잡이
『신학대전』 제1부의 2권 (정념론, De Passionibus Animae, 질문 22~48) · 『신학대전』 Ⅰ-Ⅱ, q. 24, a. 1-3
파토스 편집부 · 최종 검토 2026-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