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쓴 역작으로 서양 철학의 전제를 뒤흔든 이단아
고대 플라톤 이래로 서양 철학은 2천 년 동안 '이성이 감정의 주인이며, 감정은 이성에 굴복해야 할 열등한 노예'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철학자들은 늘 감정을 죄악시하고 이성만이 순결하다고 가르쳤습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1711~1776년) ·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A Treatise of Human Nature)』 2권(정념론) & 3권(도덕론)
차가운 머리만으로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합니다. 당신을 살아가게 하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가슴속 열정입니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오직 정념의 노예일 뿐이어야 한다. 이성은 정념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외에 결코 다른 어떤 직무도 탐낼 수 없다. —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2권 3부 3절
고대 플라톤 이래로 서양 철학은 2천 년 동안 '이성이 감정의 주인이며, 감정은 이성에 굴복해야 할 열등한 노예'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철학자들은 늘 감정을 죄악시하고 이성만이 순결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머리로는 '내일 시험이니 오늘 밤을 새워 공부해야 해', '살을 빼려면 지금 숟가락을 놓아야 해'라는 완벽한 논리를 세워놓고도, 정작 몸은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켜고 있는 자신을 보며 자책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흄의 철학에서 가장 따뜻하고 눈부신 개념은 바로 '공감(Sympathy)'입니다. 인간은 고립된 섬이 아닙니다. 한 현악기의 줄을 튕기면 곁에 있는 다른 악기의 줄이 미세하게 따라 울리듯, 인간의 마음은 타인의 기쁨과 슬픔에 본능적으로 공명합니다.
그렇다면 솟구치는 분노나 중독, 질투 같은 파괴적인 감정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흄은 '이성으로 감정과 맞짱 뜨려 하지 마라'고 경고합니다. 차가운 논리로 '화내지 마라'고 타일러봤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입니다.
우리는 흔히 '감정적인 것은 나쁘고, 이성적인 것만이 쿨하고 멋지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러나 감정을 거세당한 인간은 살아있는 송장과 다름없습니다. 사랑에 빠져 밤잠을 설치고, 억울한 일에 눈물짓고, 아름다운 음악에 소름이 돋는 그 생생한 떨림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